몽기 2022. 5. 19.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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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욕구를 느꼈다.
좋지않은 느낌이었다.
체질에 맞지도 않는 커피를 마셔서 생긴 
역류성 식도염의 전조증상일 수도 있으려니 생각했다.
 
도대체 이 느낌은 어디에서부터 발현되는 것인지 궁금했다.
서른 언저리쯤 아니 거의 낭떠러지가 보일만큼의 나이로 발을 내딛다보니
별것 아닌것들에 싱숭생숭하다.
 
다행이었다. 
이쯤되면 징징대거나 불만을 늘어놓거나 했었을텐데,
그걸 받아줄 화풀이 상대가 없었다. 
그럴 의도조차도 없었다.
항상 난 주변에 나이스한 사람으로 포장되었으니까. 
나름 보기좋게 포장되었던 엄마의 무관심주의 교육방침은
나의 감정을 스스로 삭히고 조절할 수 있을만큼의 능력을 함양시키는데 강제로 일조했다.
 
그러나 그 후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나는 감정을 배설하는 법을 그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했다.
속에서 들끓고 있는 이 답답함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은
고막이 찢어질 정도의 밀폐된 작은 클럽에서 
무아지경으로 머리를 괴이하게 흔들어보는 것 뿐이었다. 
 
또는 몸을 지치게 만들어 잡생각이 들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N잡러의 삶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육체노동의 정직한 수입은 결국 내 육신과 정신을 메마르게 했다.
감정은 매일같이 적립되었고 이자까지 복리로 불어나 버렸다.
돈이라면 써버리면 좋았을 것을.
 
육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배설이었으면 모든것이 물로 씻겨져 
땅밑으로 사라질 단순한 행위로 끝맺었을 것이다.
복잡한 감정의 선을 내 자신이 컨트롤 하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끊임없이 시도하는 수밖에.
 
묵혀왔던 평생의 감정을 억지로 추스르다보니 끓는점의 온도가 
한계치에 임박해있음을 느꼈다.
난 이제 이 변비같은 짜증나는 상황을 도대체 용납할 수 없다.
 
아 쾌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