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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일상/오프

#1. 카페 'Mondoux'

by 몽기 2021.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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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차적응 3일째

눈을 뜨자 침대 왼쪽에 세워둔 전신거울에 비친 얼굴이 보였다.

왼쪽으로 쏠려버린 얼굴. 

문득 내 나이를 떠올린뒤 쏠린 얼굴이 수초만에 원상태로 돌아와주길 포기했다.

피부상태를 체크했고 어젯밤 바른 유자수면팩이 잘먹었다는 만족감에 다시 기분이 좋았다.

아직까진 쫀득한 찹쌀떡피부.

새소리에 잠을 깨는 것은 나름 기분이 좋다.

창문을 열었고 산발적으로 불어오는 아침바람이 하얀 쉬어커튼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엔돌핀 한 스푼 얻고난 뒤 문득 아침바람을 맞으러 카페를 가고 싶어졌다.

 

 

 

#2. 출근자와 노는자

한국에서 밤을 새며 격리하는 동안 동물원 사자처럼 서성이던 베란다에서 바라본 아파트는 시키지 않아도

밤 11시에 소등되었고 새벽 5시부터 점등되었다.

문득 10년 대학로에서 일할때 겪은 만성 목결림과 안구충혈이 떠올랐다. 

눈을 질끈 감고 되뇌였다.

새벽에 일어나 저녁까지 일해야하는 루틴은 은퇴전까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이에 비하면 이 사회에서 동떨어진 삶은 얼마나 축복인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속으로 다시 빠질

용기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두바이 크릭하버에 도착했고, Mondoux 카페만이 일찍이 문을 열었다.

4월 13일부터 시작된 라마단은 한 달간 야외 취식을 금했다.

어쩔 수 없이 창가 바로 옆에 자리를 터고 앉았다.

카푸치노를 시켰다.

한 모금씩 마시자 커피잔 안에 숨어있던 여자가 수영복을 입을 모습을 드러냈다.

이 디테일보게? 

생각치못한 순간 피식거릴 수 밖에 없는 디테일이 좋았다.

 

 

락토프리 카푸치노

 

안녕?

 

 

#3.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 중간

 

 Mondoux 카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부르즈칼리파'의 기록을 갈아치울 '크릭타워'가 세워질 주변에 있었다.

멀찍이 강건너 보이는 다운타운은 장관이었다. 아침에 뜨는 태양에 반사된 부르즈칼리파의 모습은 

오늘의 결방으로 볼 수 없었지만, 석양은 언제나 제 2부의 클라이막스를 완성했다. 

 

나는 가까워 보이지만 적당한 거리에서 빛나는 부르즈칼리파가 좋았다.

그리고 언제나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에게 빛나는 사람들이 좋았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가까워진 사이는 언제나 숨이 막혔다. 

지나치게 개인주의였나 싶을정도로 난 항상 적당한 중간의 거리가 좋았다.

질척거리는 갯벌의 진흙들이 신발에 붙어 떨어지려 하지않는 끔찍한 상상이 스쳤다.  

크릭하버에서 부르즈칼리파가 보이는 그 사이 공간처럼 난 적당한 거리감이 좋았다.

 

코로나 이후의 삶은 내가 갖고 있는 인간관계의 가치관을 모두 반영한 완벽한 삶이 되었다.

적당히 거리두기. 

적당히 만나기.

적당히 여유두기.

 

집에서 식물을 관찰하고 물을 주는 것이 행복한 온전한 '여유'가 생겼고,

지난 1년과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는 지금도 삶의 기준은 바뀌지 않았다.

나의 오프는 이 카페에서 오늘도 적당히 만족스러운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석양

 

 

크릭하버 전경